겨울잠

January 23, 2025

독이라는 건, 오래가는 거야. 도망이 아닌 해방이 된 어머니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오래가는 독을 그토록 오래 버텨왔던 걸까? 겨울의 끝은 364일의 청춘의 죽음, 또 그것의 두 배 언저리 되는 끼니의 소멸. 내 기억에는 그렇게 남아있다. 보통 아주 오래된 기억은 처박아둔 필름처럼 짤막짤막, 뒤죽박죽인데, 왠지 모르게 이 한 장면은 뇌리에 박혀있다. 기억이 난다고 하는 게 맞을까?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정수리를 찍어봐라. 다음은 입술, 다음인 배꼽. 이러한 고유감각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핸들을 잡고 있던 너는 내 머릿속 펌웨어에 저장돼 있다.


주행거리 24만 쯤 되는 그 차에는 자동식 창문도 없어서 손잡이 깔짝거리며
물 파는 것만큼 남는 장사 없다고 말하던 네가 타 준 커피나 마시고 있었는데
얼음 녹은 커피는 밍밍했고, 날이 엄청 밝았었는데
날이 엄청 밝았으려나

다른 기억은 모르겠지만
나는 네가 사줬던 장난감을 잔뜩 품에 안고 있었었지
차창 밖으로 따가울 만큼 비추던 햇살이 아팠었고
네가 나를 보고 웃었던 게 기억나

그 뒤로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났어요
우린 어디가 부러지거나
어떻게 망가지거나, 불행해지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시간을 받아들인 거죠
난 많은 것을 토해내며 어찌저찌 청년이 됐고
엄마는 많은 것을 안에 담아가며
낡고 늙은 여자로 세월을 받았어야 했는데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으려나
기억 속 너는 밝은 햇살에 비춘 얼굴 때문인가
언제나 무진장 헤실헤실한 얼굴로
선함이 비춰지는 태양 같았거든요

늦겨울의 해는 너무 밝아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어요
더 따듯해지기 전에 이제 그만하고 싶은데
엄마는 이제 어딜 갔을지 처박혀서 무릎 안고 상상하는
그런 거 말이에요

밝은 햇살 아래서 그 기억 그대로 편히 잠들길


(내 나이 향년 맞먹는 어느 겨울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