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퓨타

September 4, 2025

내 콤퓨타를 싫어하는 이유:

형이상학을 배울 때 가장 기본적으로 배우는 것은 무엇인가? 정의다. 콤퓨타의 정의는 그리스 아재들이 하던 것보다 몆 만 배는 쉬운데, 그냥 타자 칠 수 있으면 그게 콤퓨타지, 별거 없다.

그럼 이게 어떻게 돌아가냐? 이 질문도 답하기 쉽다. 트랜지스터라는 부품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다. 콤퓨타는 0과 1로 대화한다는데, 0은 전기가 없는 상태, 1은 전기가 존재하는 상태란다. 이진법 내의 0과 1의 관계에 대해 잠깐이라도 고찰해 보았다면, 0은 1의 부재를 의미한다는 것쯤은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0.5가 있는 것도 아니고, 1을 초과하지도 않는다. 세상에 어디 완벽한 0과 1이 있던가? 가벼운 고백의 0.7쯤 되는 미지근한 진심도 있고, 씁쓸한 이별의 0.2만큼 비겁한 변명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 건방진 쇳덩이는 중간을 모른다. 단순히 존재하면 1인 것이고, 아니면 0이다. 그렇다면 0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이 빡대가리야

Never will this prevail, that what is not is: restrain your thought from this road of inquiry.

내 빠마니데스 행님을 그리 싫어하지 않아도 이거 하나 개소린 건 안다.

콤퓨타는 사실 전류의 유무가 아니라, 전압의 강약으로 0과 1을 분별한다. 임계 전압 이하 이상을 표기하는 것뿐, 0과 1의 본질적 가치와 전압이 얼마인지는 관계가 1도 없다. 동글뱅이 하나랑 작대기 하나여도 별 손색이 없을 듯. 그런데 콤퓨타를 좋아하는 많은 이들은 파많이데스를 농락하듯 무에 대해 말을 지껄인다. 왜? 그건 사실 참과 거짓이 로직 회로를 연구하고 설명할 때 아주 쓸모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 없이 거짓을 말하면 될 것을 굳이?

Sophist

무와 거짓은 다른가? 소피스트들이 ‘거짓’을 말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파르메니데스의 금기를 깨고 ‘있지 않은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콤퓨타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0은 아님만이 아니다. 없음이라는 상태 그 자체로 가치가 존재한다. 단순히 0을 거짓으로 치부하기엔, 이 숫자가 가진 존재론적 무게가 너무 무겁다. 정보는 불확실성의 해소다. 만약 세상에 1만 가득하다면, 그곳엔 어떤 정보도 없을거다. 모든 전구가 영원히 켜져 있다면 켜짐이라는 상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기수법에서 0은 자릿수, 논리적으론 대칭성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101에서 0이 빠지면 그것은 11이 되어버린다. 메모리 주소나 데이터 구조에서 0은 1의 결핍이 아니라, 여기에 무언가 들어올 자리가 있다는 질서를 부여한다. 0이 없다면 데이터는 형체를 유지할 수 없다. 거짓이 아닌 무는 이런 구조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0은 거짓을 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담을 그릇을 짜기 위해 그 자리에 묵묵히 무로 존재하는 것이다.